GDP에서 참성장지표로

PART 1. 낡은 GDP가 지배하는 세상

지표는 종종 세상을 바꾼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GDP이다. GDP가 없었다면 세계가 대공황을 극복하기도 더 어려웠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GNP(GDP의 전신)는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할 도구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연합국은 GNP를 전쟁 수행능력을 가늠하는 핵심지표로 사용했다. 1950년대부터 GNP는 UN(국제연합)이 인정하는 경제의 국제표준지표로 자리잡는다. 이렇게 GDP는 모두가 바라보며 전진하는 북극성의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GDP의 한계는 명확하다. GDP는 경제공황과 전쟁을 극복할 국력은 측정할 수 있지만, 개인 삶의 질과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은 측정할 수 없다. GDP는 환경 파괴, 범죄 활동 같은 부정적인 생산활동마저 긍정적으로 집계한다. GDP는 가족의 가사노동 같이 시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긍정적 활동은 집계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이념,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국가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전혀 다른 지표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참성장지표’를 개발해 내놓는다.

PART 2. 변화의 시작, 참성장지표 개발

GDP를 대체하기 위한 ‘GPI’ 지표 개발 연구가 197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참성장지표는 GPI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디지털화 등 환경 변화를 반영해 설계했다.

특히 참성장지표는 기존 GPI 방법론에다가 몇 가지 관점을 추가했다. 첫 번째 관점, 성별불평등에 대한 고려. 두 번째 관점, 부분실업(불완전취업)에 대한 고려. 세 번째 관점, 디지털화의 혜택과 악영향에 대한 고려.

그리하여 참성장지표는 한 국가의 지속가능발전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분류하고 분석한다. 첫 번째 영역, 경제 영역. 두 번째 영역, 일과 여가 영역. 세 번째 영역, 인적자본 영역. 네 번째 영역, 디지털 영역. 다섯 번째 영역, 환경 영역.

기후변화와 감염병 위기, 불평등 심화 등에 맞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제시할 지표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전환을 이끌 새로운 ‘북극성’이 필요하다. 참성장지표는 그런 북극성을 함께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PART 3. 미래를 향한 전진

참성장지표는 여전히 몇 가지 측면에서 한계와 질문을 갖고 있다. 첫째. 참성장지표는 과연 GDP의 어떤 기능을 대체할 것인가? 둘째. 지표 세부항목 측정 방법을 더 보완할 점은 없는가? 셋째. 지표 측정에 사용된 데이터의 분야별 질적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넷째. 각 국가별 참성장지표를 비교할 수 있도록 체계가 더 발전할 여지가 있나?

정책적으로 참성장지표는 세 가지의 중요한 활용 방안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지방자치단체, 특히 광역자치단체(광역시·도)가 활용하는 방안이다. 둘째. 정부 정책 성과를 평가하고 예산을 수립하는 기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셋째. GDP 만능주의를 탈피하는 새로운 국가 거시지표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의 전신인 GNP(Gross National Product: 국민총생산)는 대공황의 비극을 극복하려 만들어졌다. 이어진 세계대전의 포연 속에 이 지표는 국가의 전쟁 수행능력을 가늠하는 핵심적 지표로 자리잡았다.

대공황 직후인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뉴딜(New Deal: 새로운 계약)’을 내세운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승리했다. 당시 루스벨트 후보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내세운 뉴딜 공약은 연방정부의 적극적 경제 개입(재정 정책)을 골자로 한다.

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s - 1930: THE GREAT DEPRESSION

그런데 당시 미국에는 사회 전체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종합 지표가 없었다.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기껏해야 주가 지표와 철도화물량, 불완전한 일부 산업생산량 지표에 불과했다.
루스벨트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은 경제 상황이 어떤지도, 정부의 개입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도 객관화한 지표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다음과 같이 한탄하기도 했다.
“1929년에 정점에 도달한 경제활동의 양이 해마다 얼마나 크게 위축되었는가? 현재의 불경기가 경제 시스템의 다양한 산업 부문과 생산의 다양한 요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이용 가능한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해도 충분히 답할 수 없다.(Kuznets, 1934:1)”
이 한탄은 쿠즈네츠가 1934년에 의회에 제출한 ‘국민소득, 1929~1932(National Income, 1929~1932)’ 보고서의 일부로, 루스벨트가 쿠즈네츠에게 맡긴 ‘국민계정’ 지표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대공황의 실태를 파악하고, 뉴딜 정책이 대공황 극복에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연구였다.

“National Income, 1929~1932”, Simon Kuznets

결국 이 보고서는 루스벨트 정부가 2차 뉴딜 정책을 펼치는 기반이 됐다. 이후에도 그의 국민소득 지표 연구는 미국 정부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데이비드 필링, 2019).

세계질서의 변화가 감돌던 20세기 초부터 국부에 대한 정량적 평가는 중요한 주제였다. 대영제국이 쇠퇴하면서, 누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포문을 연 것은 옛 소련의 지도자였던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였다. 트로츠키는 1924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소련의 국부를 양적으로 측정해 비교했다. 그 결과 미국의 국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도드라졌다. 트로츠키의 예측 20여년 뒤, 미국은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면서 새로운 패권국가로 떠올랐다.
전운이 감돌면서 지표의 쓰임새는 더욱 절실해졌다. 국가의 전쟁 능력을 평가하고 대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참전이냐 아니냐, 진격이냐 후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년 뒤인 1940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어떻게 전쟁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케인스는 국가가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국가의 생산능력 평가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간략한 추정치를 직접 계산했다.

“How to Pay for the War: A Radical Plan for the Chancellor of the Exchequer”, John Maynard Keynes

특히 그는 국가의 생산 능력에 정부의 지출 항목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전까지는 무시됐던 정부와 경제 사이의 연결고리가 분명해졌으며, 정부가 경제지표에 등장하게 된다(마추카토, 2018). 또한 군비를 갖추기 위한 막대한 지출이 경제력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쿠즈네츠가 개발한 GNP가 군사력 평가와 전쟁 준비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도 1940년이었다. 히틀러 지배의 독일이 프랑스를 차지하던 시점에,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국방자문위원회를 만들고 미국의 국방 능력 평가를 요청했다.
경제학자 로버트 네이선(Robert Nathan)은 당시 국방자문위원회 연구통계국 부국장이었다. 쿠즈네츠의 제자인 네이선은 GNP를 기반으로 국방력을 예측하는 모형을 만들었다. 그는 국가의 동원으로 완전고용이 이루어졌을 때의 GNP를 먼저 계산한 뒤, 그 40~45%가 전쟁을 위한 생산에 투입될 수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리고 항공기와 탱크 생산에 필요한 철, 알루미늄, 구리 등의 생산 능력을 추산해 각각의 무기 생산 능력을 예측했다(Nathan, 1994).
네이선의 추산 결과, 미국은 1944년 이전까지는 유럽 전선에 참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당시 군 수뇌부는 1940년대 초부터 참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GNP가 없었다면, 혹은 다른 지표를 기준으로 했다면 미국의 대전략과 세계질서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다.

Royal New Zealand Air Force in Pacific Islands, World War II, 1939-1945. Archives New Zealand

GDP의 전신인 GNP는 이렇게 대공황과 전쟁을 맞아 미국과 영국에서 만들어진 지표들을 토대로 발전하며 만들어졌다. 미국이 패권국가로 떠오른 2차 세계대전 직후, 이 지표는 국제 표준의 지위에 올라선다.
UN(국제연합)은 1953년에 당시 미국의 GNP 계산 방식을 상당 부분 반영한 ‘국민계정 체계(System of National Accounts, SNA)’를 처음으로 발간했으며 이후 국제 표준으로 확대했다. 1968년에 이르러 국민소득통계, 산업연관표, 자금순환표, 국제수지표, 국민대차대조표로 구성된 5대 국민경제통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보다 체계화한 국민계정 체계로 발전했다(한국은행, 2015).
한국에서도 1957년 한국은행이 국민소득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UN에서 발표한 국민계정기준에 따라 국민총생산을 작성해 발표하고 있다.

구 한국은행 본점
“우리나라의 국민계정체계 (2020)”, 한국은행

공황 극복과 전쟁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국부 측정 지표가, 이제 한 국가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국제 표준의 지위를 획득한 덕분에 여러 국가의 발전 정도를 계량화 해 비교하는 잣대로도 활용된다.

심지어 GDP를 개발한 쿠즈네츠 스스로도 GDP를 국민 후생 지표로 사용하는 접근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GDP에 의해 정의된 국민소득의 측정을 통해서는 한 국가의 삶의 질 수준을 알 수 없다(Kuznets, 1934).”

예를 들어 보자. 2005년 미국 동남부를 강타하고 1,836명의 사망자와 85만 가구의 이재민, 60만 개의 일자리 손실과 1,300만 에이커(acre)의 산림 훼손을 가져온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미국의 GDP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허리케인이 초래한 수많은 인명과 재산, 일자리, 환경 손실에도 불구하고 허리케인이 지나간 직후인 2005년 3분기 미국의 GDP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3.8% ‘성장’했다. 허리케인이 할퀴고 간 상처와 슬픔이 수백 만명의 미국인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도 피해 복구 과정이 견인한 성장의 결과가 GDP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Talberth, Cobb, & Slattery, 2007).

이와 같이 시장에서 측정되는 생산활동에만 초점을 맞춘 GDP는 그 생산활동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재화의 생산 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만들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나 이를 정화하는 활동이 똑같이 GDP에 합산되며, 범죄 활동과 아동의 건강과 보육을 위한 활동이 동일하게 GDP에 포함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위해 시장에서 측정할 수 있는 경제활동만을 GDP에 포함시키다 보니 정작 시장에서 거래되지는 않지만 국민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사노동 등의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내가 가사노동을 해줄 사람을 고용하고 임금을 지불하면 이는 GDP에 포함되지만, 그 사람과 결혼하는 순간 가사노동의 가치는 GDP에서 제외된다.

UN Women

GDP가 태동한 20세기 전반기는 대공황과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생존하는 일이 지상의 과제였다. 생산 증대를 통한 양적인 경제성장이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졌던 시기다. 개인의 삶의 질과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 등은 고려할 겨를이 없었다.
이에 비해 2020년대는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이 초래한 갖가지 부작용들,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뛰어넘는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대다.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해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이념, 목표 수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국가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전혀 다른 지표가 필요한 이유다.

참성장지표는 GDP의 한계와 그동안 논의된 다양한 대안지표를 검토한 끝에 만들어졌다. 국제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GPI(Genuine Progress Indicator)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디지털화 등 환경 변화를 반영해 설계했다.
GPI의 접근은 구체적으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노드하우스와 토빈(Nordhaus & Tobin, 1973)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들은 GDP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경제적 후생 지표(Measure of Economic Welfare, 이하 ‘MEW’)를 개발했다. MEW(경제적 후생지표)는 GDP에 여가 시간의 가치와 가사노동을 포함한 무급 노동의 양을 포함시켜 계산했다. GDP를 좀더 후생 측정 목적으로 개선하자는 시도였던 셈이다.
1990년대 생태경제학자인 허먼 데일리(Herman Daly)와 환경철학자인 존 캅(John Cobb) 등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경제활동 뿐만 아니라 사회환경적 측면의 비용과 편익을 합산해 국가의 지속가능한 후생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인 GPI를 고안했다. 이후 GPI는 다양한 연구자들과 미국 메릴랜드와 유타 주 등에 의해 연구, 활용되면서 가계의 소비 수준과 소득불평등, 무급가사노동과 같은 비시장 영역에서 창출되는 가치, 범죄와 환경오염 등에 따른 후생의 감소 등을 종합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dnr.maryland.gov

참성장지표는 경제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 개인의 시간, 인적 자본, 디지털 서비스의 가치를 화폐화해 반영한 지표이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환경이 파괴된다면, GDP는 커지더라도 참성장지표는 작아질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인적자본이나 디지털 서비스의 가치가 감소된다면 성장세는 그만큼 축소될 수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제품의 양이 정체되더라도,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가사, 돌봄, 자원봉사 활동 등이 늘어난다면 실제 우리 삶의 질은 높아질 수 있다.
참성장지표는 이런 점들을 모두 측정해 화폐가치로 환산해 하나의 수치로 계량화한 지표이다. 시장에서 교환된 재화와 서비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GDP와는 달리, 참성장지표는 현재와 미래의 삶의 질에 영향을 주지만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담은 지표이다.

참성장전략(최영준, 2021)

기존 GPI 논의에서는 소득불평등이 반영되어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낮추는 요소로 평가한다. 하지만 다른 불평등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가정 내에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등의 무급 가사돌봄노동은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돈을 받지 않더라도 이런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사돌봄노동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더라도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오랜 기간 누적된 성별 간의 불평등 탓에 벌어지는 가사돌봄노동의 편중 여부는 살펴보지 않는다. 참성장지표는 ‘불평등의 다차원성’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를 위해 무급 가사돌봄노동의 불평등성을 측정하고, 이를 화폐화해 가치평가에 반영한다.

기존 GPI 논의에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측정한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성장지표는 최근 플랫폼 노동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노동 환경의 변화를 고려했다. 개인의 의지와 달리 경제 구조적 요인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업과 마찬가지로, 비자발적으로 전시간 근로가 아닌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하는데 따른 불완전취업의 사회적 손실까지 포괄해 측정했다.

이것은 기존 GPI 연구에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은 요소이다. 디지털 전환은 모든 사람이 이전과 전혀 다른 서비스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긍정적 요소도, 부정적 요소도 있을 수 있다. 기존 지표들에서는 디지털 전환의 긍정적 가치를 포괄하지만 부정적 영향은 평가하지 않는다. 참성장지표는 디지털 전환이 삶의 질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측정해 반영한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합의한 발전 개념인 지속가능발전은 경제ㆍ사회ㆍ환경의 조화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균형을 고려한 발전을 추구한다. 참성장지표는 지속가능발전의 분석 틀을 기반으로 한다.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기존 연구는 대부분 경제-사회-환경이라는 세 가지 영역 분류를 기본 틀로 삼는다.

www.un.org/sustainabledevelopment

참성장지표는 이를 다섯 가지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현재 세대의 삶의 질과 미래 세대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했다.

첫째는 경제 영역(GPI-Ec)이다. 소비 등 개인 삶의 질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소득 불평등과 같이 경제 구성원 내의 분배적 측면을 충분히 반영했다. 또한 가계와 기업, 대외 무역 차원에서의 투자 효과를 포괄하고 있다.

둘째는 일과 여가 영역(GPI-WL)이다. 이 영역에서는 가사노동 불평등이 감안된 무급 가사돌봄노동을 핵심으로, 통근시간이나 여가시간 등 개인의 시간 가치와 자원봉사, 가족 해체와 같은 사회적 자본 측면이 고려되었다.

셋째는 인적자본 영역(GPI-HC)이다. 이 영역에서는 고등교육의 가치와 같은 긍정적 인적자본 영향과 함께, 범죄나 실업 등과 같이 인적자본의 부정적 활용과 미활용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감안하였다.

넷째 영역은 디지털 영역(GPI-Di)으로 디지털화의 비시장적 혜택과 부정적 영향이 여기에 포함된다.

다섯째 영역은 환경 영역(GPI-En)이다. 탄소배출, 산림훼손 등 미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자연자본을 감소에 따른 부정적 영향과, 대기, 수질 오염 등 환경오염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함께 고려했다.

여전히 우리는 20세기 전반의 지표로 국가발전 정도를 측정하고 비교한다. 하지만 루스벨트나 케인스 시대의 화두가 21세기에도 똑같이 유효할 수는 없다.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는 대공황과 전쟁을 넘어선다.
시대 상황과 조건이 달라진 만큼,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를 담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GDP라는 과거의 낡은 지표를 금과옥조로 삼아 정책의 방향을 설계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기후변화와 감염병 위기, 불평등 심화 등에 맞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줄 수 있는 가치 척도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새로운 지표는 성장 지상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지속가능성과 공존, 조화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GDP 만능주의에서 국가 지표를 다변화한다는 목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GDP의 어떤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이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GDP는 원래 대공황 극복과 전쟁 수행 능력 측정을 위해 만든 지표였다. 즉 국부(국력)의 크기를 측정하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현대로 오면서 여기에 삶의 질(후생)의 측정이라는 목표가 추가됐다.
결과적으로 GDP는 국부(또는 국력)와 국민의 삶의 질 등 다양한 요소를 측정하는 복합적 지표가 되었다. 반대로 국부 측정 및 삶의 질 측정 중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충족하지 못하는 지표가 되었다.
참성장지표는 이 가운데 삶의 질 측정 측면을 강조한다. 결국 GDP의 한 쪽 측면만을 대체할 수 있는 지표인 셈이다.
그럼에도 전쟁수행능력 등과 관련이 있는 국부의 측정을 위한 지표 역시 여전히 필요하다. 참성장지표나 GDP와는 별개로, 국부 측정을 위해 안보, 자연 자원, 인적 자원 등에 대해 단순 유량 중심의 지표 관리 체계를 축적된 자원(STOCK 중심)으로 지표를 개발하고,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컨대 소득불평등 측정은 여전히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가구소득 지니계수를 기준연도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불평등도를 측정한 참성장지표의 측정방식이 가장 합당한 것인지 다양한 토론이 필요하다.
가계의 방어지출과 정부의 공공소비지출은 참성장지표 세부항목 중 중요한 영역이다. 그런데 현재의 참성장지표에서 가계의 방어지출과 정부의 공공소비지출 중 각 세부항목에 대해 부여하는 가중치는 어느 정도 임의적인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이를 합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데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소비지출 항목을 방어지출과 연관지어 평가할 수 있도록 고도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보완한다면, 방어지출과 정부의 공공소비지출 가중치를 좀더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사돌봄노동 불평등은 참성장지표에 독특한 요소이다. 삶의 질에서 돌봄노동 불평등은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넣은 세부항목이다. 그러나 가사돌봄노동의 불평등이 삶의 질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치는데에 대해서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참성장지표에서는 해외 연구에 근거해 고등교육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했다. 그러나 교육과 관련된 지나친 경쟁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
디지털 영역 역시 참성장지표에 고유한 특성이다. 그러나 관련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디지털 서비스가 삶의 질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깊이있게 연구해 반영할 필요가 있다.
참성장지표는 환경 영역에서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타국의 기준을 인용해 적용했다. 기후변화 문제의 특성 상 해외에서 발생한 탄소의 사회적 비용과 국내에서 발생한 탄소의 사회적 비용에 차이가 없을 수도 있으나, 국내 차원에서 그 타당성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또한 탄소의 사회적 비용의 핵심 결정 요인인 장기 사회적 할인율 수준에 대한 논의 역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개선된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참성장지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성장지표는 폐기물 오염에 따른 비용 역시 현재 생활 폐기물 관리 예산을 바탕으로 일괄적으로 측정했는데,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는 사업폐기물, 건설폐기물의 처리 비용 및 사회적 비용에 대한 별도의 측정과 관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참성장지표는 현존하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특히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수집하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그런데 생산 및 소비 등 GDP집계와 관련된 데이터가 촘촘하게 수집되고 있는 반면, 일과 여가 시간, 인적자본, 디지털 등의 데이터는 수집 주기나 깊이에서 상당히 뒤처져 있다.
예를 들어 참성장지표 일과 여가 영역의 주요 데이터원인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의 경우, 5년에 한번씩 시행되어 데이터 주기에 한계가 명확하다. 코로나19 시기 일과 여가시간의 변동조차 측정하지 못할 정도다. 우선 생활시간조사 같은 조사의 경우 주기를 최소한 2~3년 주기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
GDP와 관련이 있는 경제활동인구조사는 매달 이뤄지는데,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예컨대 미국의 예처럼 경제활동인구조사 시 표본조사를 통해 생활시간 등을 조사하는 것이다.

참성장지표는 GPI틀을 갖고 있어 국제비교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에 고유한 데이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국제비교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GDP를 넘어서는 노력은 국제적 차원,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지표체계를 염두에 두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현재 지표 체계 중 국제 비교가 가능한 영역을 축으로 국제 비교 버전을 구축하고, 국제 사회와 논의 틀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의 메릴랜드 및 버몬트 주의 GPI 추정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광역시도 차원의 참성장 지표 구축 시범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다년간의 광역시도 사업을 통해 참성장 지표와 기타 양적 성장지표(GDP/GRDP) 간의 괴리 및 상관관계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가계 후생 및 삶의 질 측정에 보다 적합한 참성장 지표를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특정 지자체에서 측정된 지표와 사례를 기초로 점차 여타 광역시도 및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뉴질랜드 웰빙예산 등 예산수립 과정에서 사회환경적 가치를 고려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목표에 삶의 질 향상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 수립 기준과 성과 평가 기준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해진 시대에는, GDP 만능주의를 벗어나 국가 거시지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참성장지표는 국가의 거시지표를 다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GDP는 일정 기간의 생산 능력에 치중되어 삶의 질 지표로는 물론, 국부 측정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국부 측정을 위해 안보, 자연 자원, 인적 자원 등에 대해 단순 유량 중심의 지표 관리 체계를 축적된 자원(STOCK 중심)으로 지표를 개발하고,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GDP 역시 시장의 변화(FLOW)를 파악하는 주요 지표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그 역할에 맞게 관리, 발전 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전제로 참성장지표는 국부(STOCK), 생산(FLOW)의 기반하에 국민 삶의 질(OUTCOME)이 종합적으로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진단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GDP에서 참성장지표로

PART 1. 낡은 GDP가 지배하는 세상

지표는 종종 세상을 바꾼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GDP이다.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의 전신인 GNP(Gross National Product: 국민총생산)는 대공황의 비극을 극복하려 만들어졌다. 이어진 세계대전의 포연 속에 이 지표는 국가의 전쟁 수행능력을 가늠하는 핵심적 지표로 자리잡았다.

GDP가 없었다면 세계가 대공황을 극복하기도 더 어려웠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GNP(GDP의 전신)는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할 도구로 만들어졌다.

대공황 직후인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뉴딜(New Deal: 새로운 계약)’을 내세운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승리했다. 당시 루스벨트 후보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내세운 뉴딜 공약은 연방정부의 적극적 경제 개입(재정 정책)을 골자로 한다.

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s - 1930: THE GREAT DEPRESSION

그런데 당시 미국에는 사회 전체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종합 지표가 없었다.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기껏해야 주가 지표와 철도화물량, 불완전한 일부 산업생산량 지표에 불과했다.
루스벨트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은 경제 상황이 어떤지도, 정부의 개입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도 객관화한 지표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다음과 같이 한탄하기도 했다.
“1929년에 정점에 도달한 경제활동의 양이 해마다 얼마나 크게 위축되었는가? 현재의 불경기가 경제 시스템의 다양한 산업 부문과 생산의 다양한 요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이용 가능한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해도 충분히 답할 수 없다.(Kuznets, 1934:1)”
이 한탄은 쿠즈네츠가 1934년에 의회에 제출한 ‘국민소득, 1929~1932(National Income, 1929~1932)’ 보고서의 일부로, 루스벨트가 쿠즈네츠에게 맡긴 ‘국민계정’ 지표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대공황의 실태를 파악하고, 뉴딜 정책이 대공황 극복에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연구였다.

“National Income, 1929~1932”, Simon Kuznets

결국 이 보고서는 루스벨트 정부가 2차 뉴딜 정책을 펼치는 기반이 됐다. 이후에도 그의 국민소득 지표 연구는 미국 정부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데이비드 필링, 2019).

제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연합국은 GNP를 전쟁 수행능력을 가늠하는 핵심지표로 사용했다.

세계질서의 변화가 감돌던 20세기 초부터 국부에 대한 정량적 평가는 중요한 주제였다. 대영제국이 쇠퇴하면서, 누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포문을 연 것은 옛 소련의 지도자였던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였다. 트로츠키는 1924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소련의 국부를 양적으로 측정해 비교했다. 그 결과 미국의 국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도드라졌다. 트로츠키의 예측 20여년 뒤, 미국은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면서 새로운 패권국가로 떠올랐다.
전운이 감돌면서 지표의 쓰임새는 더욱 절실해졌다. 국가의 전쟁 능력을 평가하고 대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참전이냐 아니냐, 진격이냐 후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년 뒤인 1940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어떻게 전쟁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케인스는 국가가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국가의 생산능력 평가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간략한 추정치를 직접 계산했다.

“How to Pay for the War: A Radical Plan for the Chancellor of the Exchequer”, John Maynard Keynes

특히 그는 국가의 생산 능력에 정부의 지출 항목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전까지는 무시됐던 정부와 경제 사이의 연결고리가 분명해졌으며, 정부가 경제지표에 등장하게 된다(마추카토, 2018). 또한 군비를 갖추기 위한 막대한 지출이 경제력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쿠즈네츠가 개발한 GNP가 군사력 평가와 전쟁 준비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도 1940년이었다. 히틀러 지배의 독일이 프랑스를 차지하던 시점에,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국방자문위원회를 만들고 미국의 국방 능력 평가를 요청했다.
경제학자 로버트 네이선(Robert Nathan)은 당시 국방자문위원회 연구통계국 부국장이었다. 쿠즈네츠의 제자인 네이선은 GNP를 기반으로 국방력을 예측하는 모형을 만들었다. 그는 국가의 동원으로 완전고용이 이루어졌을 때의 GNP를 먼저 계산한 뒤, 그 40~45%가 전쟁을 위한 생산에 투입될 수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리고 항공기와 탱크 생산에 필요한 철, 알루미늄, 구리 등의 생산 능력을 추산해 각각의 무기 생산 능력을 예측했다(Nathan, 1994).
네이선의 추산 결과, 미국은 1944년 이전까지는 유럽 전선에 참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당시 군 수뇌부는 1940년대 초부터 참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GNP가 없었다면, 혹은 다른 지표를 기준으로 했다면 미국의 대전략과 세계질서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다.

Royal New Zealand Air Force in Pacific Islands, World War II, 1939-1945. Archives New Zealand

1950년대부터 GNP는 UN(국제연합)이 인정하는 경제의 국제표준지표로 자리잡는다.

GDP의 전신인 GNP는 이렇게 대공황과 전쟁을 맞아 미국과 영국에서 만들어진 지표들을 토대로 발전하며 만들어졌다. 미국이 패권국가로 떠오른 2차 세계대전 직후, 이 지표는 국제 표준의 지위에 올라선다.
UN(국제연합)은 1953년에 당시 미국의 GNP 계산 방식을 상당 부분 반영한 ‘국민계정 체계(System of National Accounts, SNA)’를 처음으로 발간했으며 이후 국제 표준으로 확대했다. 1968년에 이르러 국민소득통계, 산업연관표, 자금순환표, 국제수지표, 국민대차대조표로 구성된 5대 국민경제통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보다 체계화한 국민계정 체계로 발전했다(한국은행, 2015).
한국에서도 1957년 한국은행이 국민소득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UN에서 발표한 국민계정기준에 따라 국민총생산을 작성해 발표하고 있다.

구 한국은행 본점
“우리나라의 국민계정체계 (2020)”, 한국은행

이렇게 GDP는 모두가 바라보며 전진하는 북극성의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공황 극복과 전쟁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국부 측정 지표가, 이제 한 국가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국제 표준의 지위를 획득한 덕분에 여러 국가의 발전 정도를 계량화 해 비교하는 잣대로도 활용된다.

그러나 GDP의 한계는 명확하다.

GDP는 경제공황과 전쟁을 극복할 국력은 측정할 수 있지만, 개인 삶의 질과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은 측정할 수 없다.

심지어 GDP를 개발한 쿠즈네츠 스스로도 GDP를 국민 후생 지표로 사용하는 접근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GDP에 의해 정의된 국민소득의 측정을 통해서는 한 국가의 삶의 질 수준을 알 수 없다(Kuznets, 1934).”

GDP는 환경 파괴, 범죄 활동 같은 부정적인 생산활동마저 긍정적으로 집계한다.

예를 들어 보자. 2005년 미국 동남부를 강타하고 1,836명의 사망자와 85만 가구의 이재민, 60만 개의 일자리 손실과 1,300만 에이커(acre)의 산림 훼손을 가져온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미국의 GDP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허리케인이 초래한 수많은 인명과 재산, 일자리, 환경 손실에도 불구하고 허리케인이 지나간 직후인 2005년 3분기 미국의 GDP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3.8% ‘성장’했다. 허리케인이 할퀴고 간 상처와 슬픔이 수백 만명의 미국인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도 피해 복구 과정이 견인한 성장의 결과가 GDP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Talberth, Cobb, & Slattery, 2007).

이와 같이 시장에서 측정되는 생산활동에만 초점을 맞춘 GDP는 그 생산활동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재화의 생산 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만들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나 이를 정화하는 활동이 똑같이 GDP에 합산되며, 범죄 활동과 아동의 건강과 보육을 위한 활동이 동일하게 GDP에 포함된다.

GDP는 가족의 가사노동 같이 시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긍정적 활동은 집계하지 않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위해 시장에서 측정할 수 있는 경제활동만을 GDP에 포함시키다 보니 정작 시장에서 거래되지는 않지만 국민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사노동 등의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내가 가사노동을 해줄 사람을 고용하고 임금을 지불하면 이는 GDP에 포함되지만, 그 사람과 결혼하는 순간 가사노동의 가치는 GDP에서 제외된다.

UN Women

이제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이념,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국가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전혀 다른 지표가 필요하다.

GDP가 태동한 20세기 전반기는 대공황과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생존하는 일이 지상의 과제였다. 생산 증대를 통한 양적인 경제성장이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졌던 시기다. 개인의 삶의 질과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 등은 고려할 겨를이 없었다.
이에 비해 2020년대는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이 초래한 갖가지 부작용들,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뛰어넘는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대다.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해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이념, 목표 수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국가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전혀 다른 지표가 필요한 이유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참성장지표’를 개발해 내놓는다.

PART 2. 변화의 시작, 참성장지표 개발

GDP를 대체하기 위한 ‘GPI’ 지표 개발 연구가 197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참성장지표는 GDP의 한계와 그동안 논의된 다양한 대안지표를 검토한 끝에 만들어졌다. 국제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GPI(Genuine Progress Indicator)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디지털화 등 환경 변화를 반영해 설계했다.
GPI의 접근은 구체적으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노드하우스와 토빈(Nordhaus & Tobin, 1973)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들은 GDP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경제적 후생 지표(Measure of Economic Welfare, 이하 ‘MEW’)를 개발했다. MEW(경제적 후생지표)는 GDP에 여가 시간의 가치와 가사노동을 포함한 무급 노동의 양을 포함시켜 계산했다. GDP를 좀더 후생 측정 목적으로 개선하자는 시도였던 셈이다.
1990년대 생태경제학자인 허먼 데일리(Herman Daly)와 환경철학자인 존 캅(John Cobb) 등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경제활동 뿐만 아니라 사회환경적 측면의 비용과 편익을 합산해 국가의 지속가능한 후생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인 GPI를 고안했다. 이후 GPI는 다양한 연구자들과 미국 메릴랜드와 유타 주 등에 의해 연구, 활용되면서 가계의 소비 수준과 소득불평등, 무급가사노동과 같은 비시장 영역에서 창출되는 가치, 범죄와 환경오염 등에 따른 후생의 감소 등을 종합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dnr.maryland.gov

참성장지표는 GPI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디지털화 등 환경 변화를 반영해 설계했다.

참성장지표는 경제뿐만 아니라 자연 환경, 개인의 시간, 인적 자본, 디지털 서비스의 가치를 화폐화해 반영한 지표이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환경이 파괴된다면, GDP는 커지더라도 참성장지표는 작아질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인적자본이나 디지털 서비스의 가치가 감소된다면 성장세는 그만큼 축소될 수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제품의 양이 정체되더라도,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가사, 돌봄, 자원봉사 활동 등이 늘어난다면 실제 우리 삶의 질은 높아질 수 있다.
참성장지표는 이런 점들을 모두 측정해 화폐가치로 환산해 하나의 수치로 계량화한 지표이다. 시장에서 교환된 재화와 서비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GDP와는 달리, 참성장지표는 현재와 미래의 삶의 질에 영향을 주지만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담은 지표이다.

참성장전략(최영준, 2021)

특히 참성장지표는 기존 GPI 방법론에다가 몇 가지 관점을 추가했다.

첫 번째 관점, 성별불평등에 대한 고려.

기존 GPI 논의에서는 소득불평등이 반영되어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낮추는 요소로 평가한다. 하지만 다른 불평등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가정 내에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등의 무급 가사돌봄노동은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돈을 받지 않더라도 이런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사돌봄노동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더라도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오랜 기간 누적된 성별 간의 불평등 탓에 벌어지는 가사돌봄노동의 편중 여부는 살펴보지 않는다. 참성장지표는 ‘불평등의 다차원성’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를 위해 무급 가사돌봄노동의 불평등성을 측정하고, 이를 화폐화해 가치평가에 반영한다.

두 번째 관점, 부분실업(불완전취업)에 대한 고려.

기존 GPI 논의에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측정한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성장지표는 최근 플랫폼 노동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노동 환경의 변화를 고려했다. 개인의 의지와 달리 경제 구조적 요인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업과 마찬가지로, 비자발적으로 전시간 근로가 아닌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하는데 따른 불완전취업의 사회적 손실까지 포괄해 측정했다.

세 번째 관점, 디지털화의 혜택과 악영향에 대한 고려.

이것은 기존 GPI 연구에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은 요소이다. 디지털 전환은 모든 사람이 이전과 전혀 다른 서비스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긍정적 요소도, 부정적 요소도 있을 수 있다. 기존 지표들에서는 디지털 전환의 긍정적 가치를 포괄하지만 부정적 영향은 평가하지 않는다. 참성장지표는 디지털 전환이 삶의 질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측정해 반영한다.

그리하여 참성장지표는 한 국가의 지속가능발전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분류하고 분석한다.

첫 번째 영역, 경제 영역.

첫째는 경제 영역(GPI-Ec)이다. 소비 등 개인 삶의 질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소득 불평등과 같이 경제 구성원 내의 분배적 측면을 충분히 반영했다. 또한 가계와 기업, 대외 무역 차원에서의 투자 효과를 포괄하고 있다.

두 번째 영역, 일과 여가 영역.

둘째는 일과 여가 영역(GPI-WL)이다. 이 영역에서는 가사노동 불평등이 감안된 무급 가사돌봄노동을 핵심으로, 통근시간이나 여가시간 등 개인의 시간 가치와 자원봉사, 가족 해체와 같은 사회적 자본 측면이 고려되었다.

세 번째 영역, 인적자본 영역.

셋째는 인적자본 영역(GPI-HC)이다. 이 영역에서는 고등교육의 가치와 같은 긍정적 인적자본 영향과 함께, 범죄나 실업 등과 같이 인적자본의 부정적 활용과 미활용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감안하였다.

네 번째 영역, 디지털 영역.

넷째 영역은 디지털 영역(GPI-Di)으로 디지털화의 비시장적 혜택과 부정적 영향이 여기에 포함된다.

다섯 번째 영역, 환경 영역.

다섯째 영역은 환경 영역(GPI-En)이다. 탄소배출, 산림훼손 등 미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자연자본을 감소에 따른 부정적 영향과, 대기, 수질 오염 등 환경오염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함께 고려했다.

기후변화와 감염병 위기, 불평등 심화 등에 맞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제시할 지표가 필요하다.

여전히 우리는 20세기 전반의 지표로 국가발전 정도를 측정하고 비교한다. 하지만 루스벨트나 케인스 시대의 화두가 21세기에도 똑같이 유효할 수는 없다.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는 대공황과 전쟁을 넘어선다.
시대 상황과 조건이 달라진 만큼,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를 담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GDP라는 과거의 낡은 지표를 금과옥조로 삼아 정책의 방향을 설계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기후변화와 감염병 위기, 불평등 심화 등에 맞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줄 수 있는 가치 척도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새로운 지표는 성장 지상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지속가능성과 공존, 조화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전환을 이끌 새로운 ‘북극성’이 필요하다.

참성장지표는 그런 북극성을 함께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PART 3. 미래를 향한 전진

참성장지표는 여전히 몇 가지 측면에서 한계와 질문을 갖고 있다.

첫째. 참성장지표는 과연 GDP의 어떤 기능을 대체할 것인가?

GDP 만능주의에서 국가 지표를 다변화한다는 목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GDP의 어떤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이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GDP는 원래 대공황 극복과 전쟁 수행 능력 측정을 위해 만든 지표였다. 즉 국부(국력)의 크기를 측정하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현대로 오면서 여기에 삶의 질(후생)의 측정이라는 목표가 추가됐다.
결과적으로 GDP는 국부(또는 국력)와 국민의 삶의 질 등 다양한 요소를 측정하는 복합적 지표가 되었다. 반대로 국부 측정 및 삶의 질 측정 중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충족하지 못하는 지표가 되었다.
참성장지표는 이 가운데 삶의 질 측정 측면을 강조한다. 결국 GDP의 한 쪽 측면만을 대체할 수 있는 지표인 셈이다.
그럼에도 전쟁수행능력 등과 관련이 있는 국부의 측정을 위한 지표 역시 여전히 필요하다. 참성장지표나 GDP와는 별개로, 국부 측정을 위해 안보, 자연 자원, 인적 자원 등에 대해 단순 유량 중심의 지표 관리 체계를 축적된 자원(STOCK 중심)으로 지표를 개발하고,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지표 세부항목 측정 방법을 더 보완할 점은 없는가?

예컨대 소득불평등 측정은 여전히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가구소득 지니계수를 기준연도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불평등도를 측정한 참성장지표의 측정방식이 가장 합당한 것인지 다양한 토론이 필요하다.
가계의 방어지출과 정부의 공공소비지출은 참성장지표 세부항목 중 중요한 영역이다. 그런데 현재의 참성장지표에서 가계의 방어지출과 정부의 공공소비지출 중 각 세부항목에 대해 부여하는 가중치는 어느 정도 임의적인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이를 합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데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소비지출 항목을 방어지출과 연관지어 평가할 수 있도록 고도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보완한다면, 방어지출과 정부의 공공소비지출 가중치를 좀더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사돌봄노동 불평등은 참성장지표에 독특한 요소이다. 삶의 질에서 돌봄노동 불평등은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넣은 세부항목이다. 그러나 가사돌봄노동의 불평등이 삶의 질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치는데에 대해서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참성장지표에서는 해외 연구에 근거해 고등교육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했다. 그러나 교육과 관련된 지나친 경쟁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
디지털 영역 역시 참성장지표에 고유한 특성이다. 그러나 관련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디지털 서비스가 삶의 질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깊이있게 연구해 반영할 필요가 있다.
참성장지표는 환경 영역에서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타국의 기준을 인용해 적용했다. 기후변화 문제의 특성 상 해외에서 발생한 탄소의 사회적 비용과 국내에서 발생한 탄소의 사회적 비용에 차이가 없을 수도 있으나, 국내 차원에서 그 타당성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또한 탄소의 사회적 비용의 핵심 결정 요인인 장기 사회적 할인율 수준에 대한 논의 역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개선된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참성장지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성장지표는 폐기물 오염에 따른 비용 역시 현재 생활 폐기물 관리 예산을 바탕으로 일괄적으로 측정했는데,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는 사업폐기물, 건설폐기물의 처리 비용 및 사회적 비용에 대한 별도의 측정과 관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셋째. 지표 측정에 사용된 데이터의 분야별 질적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참성장지표는 현존하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특히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수집하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그런데 생산 및 소비 등 GDP집계와 관련된 데이터가 촘촘하게 수집되고 있는 반면, 일과 여가 시간, 인적자본, 디지털 등의 데이터는 수집 주기나 깊이에서 상당히 뒤처져 있다.
예를 들어 참성장지표 일과 여가 영역의 주요 데이터원인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의 경우, 5년에 한번씩 시행되어 데이터 주기에 한계가 명확하다. 코로나19 시기 일과 여가시간의 변동조차 측정하지 못할 정도다. 우선 생활시간조사 같은 조사의 경우 주기를 최소한 2~3년 주기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
GDP와 관련이 있는 경제활동인구조사는 매달 이뤄지는데,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예컨대 미국의 예처럼 경제활동인구조사 시 표본조사를 통해 생활시간 등을 조사하는 것이다.

넷째. 각 국가별 참성장지표를 비교할 수 있도록 체계가 더 발전할 여지가 있나?

참성장지표는 GPI틀을 갖고 있어 국제비교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에 고유한 데이터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국제비교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GDP를 넘어서는 노력은 국제적 차원,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지표체계를 염두에 두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현재 지표 체계 중 국제 비교가 가능한 영역을 축으로 국제 비교 버전을 구축하고, 국제 사회와 논의 틀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정책적으로 참성장지표는 세 가지의 중요한 활용 방안을 가지고 있다.

첫째. 지방자치단체, 특히 광역자치단체(광역시·도)가 활용하는 방안이다.

미국의 메릴랜드 및 버몬트 주의 GPI 추정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광역시도 차원의 참성장 지표 구축 시범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다년간의 광역시도 사업을 통해 참성장 지표와 기타 양적 성장지표(GDP/GRDP) 간의 괴리 및 상관관계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가계 후생 및 삶의 질 측정에 보다 적합한 참성장 지표를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특정 지자체에서 측정된 지표와 사례를 기초로 점차 여타 광역시도 및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부 정책 성과를 평가하고 예산을 수립하는 기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뉴질랜드 웰빙예산 등 예산수립 과정에서 사회환경적 가치를 고려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목표에 삶의 질 향상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 수립 기준과 성과 평가 기준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 GDP 만능주의를 탈피하는 새로운 국가 거시지표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해진 시대에는, GDP 만능주의를 벗어나 국가 거시지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참성장지표는 국가의 거시지표를 다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GDP는 일정 기간의 생산 능력에 치중되어 삶의 질 지표로는 물론, 국부 측정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국부 측정을 위해 안보, 자연 자원, 인적 자원 등에 대해 단순 유량 중심의 지표 관리 체계를 축적된 자원(STOCK 중심)으로 지표를 개발하고,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GDP 역시 시장의 변화(FLOW)를 파악하는 주요 지표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그 역할에 맞게 관리, 발전 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전제로 참성장지표는 국부(STOCK), 생산(FLOW)의 기반하에 국민 삶의 질(OUTCOME)이 종합적으로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진단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